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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siaen, Quatuor pour la fin du Temps

文井 2015. 3. 18. 05:40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구름에 휩싸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고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 그는 손에 작은 두루마리를 펴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서, 사자가 포효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가 외치자 일곱 천둥도 저마다 소리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일곱 천둥이 말하자 나는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울려오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봉인해 두어라." 그러자 내가 본 천사 곧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던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쳐들고서는,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을 두고,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두고 맹세하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그분의 신비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10:1-7>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1st Mov. Liturgie de cristal 수정의 예배

Friedemann Amadeus Treiber, violin / Marcus Raus, clarinet

Thomas Lukovich, cello / Roman Kuhn, piano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2nd Mov. Vocalise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du temps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를 위한 찬송

Friedemann Amadeus Treiber, violin / Marcus Raus, clarinet

Thomas Lukovich, cello / Roman Kuhn, piano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3rd Mov. Abime des oiseaux 새들의 심연

Marcus Raus, clarinet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4th Mov. Intermede 간주곡

Friedemann Amadeus Treiber, violin / Marcus Raus, clarinet / Thomas Lukovich, cello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5th Mov. Louange a l'Eternite du Jesus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송가

Thomas Lukovich, cello / Roman Kuhn, piano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6th Mov. Danse de la fureur, pour les sept trompettes 7개의 나팔을 위한 광란의 춤

Friedemann Amadeus Treiber, violin / Marcus Raus, clarinet

Thomas Lukovich, cello / Roman Kuhn, piano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7th Mov. Fouillis d'arcs-en-ciel,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착란

Friedemann Amadeus Treiber, violin / Marcus Raus, clarinet

Thomas Lukovich, cello / Roman Kuhn, piano

 

Olivier Messiaen,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8th Mov. Louange a l'Immortalite du Jesus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

Friedemann Amadeus Treiber, violin / Roman Kuhn, piano

 

올리비에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 

 

메시앙 탄생 100주년을 보내며


1941년 1월 15일, 영하 20도를 넘는 혹한의 실레지아 포로 수용소. 2차 세계대전의 성난 숨결을 잠시나마 멎게 하는 피아노,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의 화음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치군에 잡힌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포로 3만 명이 수용되어 있던 이곳에서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이 세계 초연되고 있었던 것. 포로였던 서른세 살의 작곡가 메시앙이 피아노를 직접 치고 있었다.


“악기는 거의 폐품이었다. 파스키에가 연주한 첼로는 줄이 세 개밖에 없었고, 내가 친 피아노의 오른쪽 건반들은 쿡 누르면 다시 튀어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헐어빠진 군복 차림이었다….”


비참한 시대에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


포로가 된 5천명의 병사들, 그리고 이들을 포로로 잡은 독일군들이 함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메시앙의 회고에 따르면 “내 작품을 이토록 황홀하게, 주의 깊게, 잘 이해하며 듣는 청중은 없었다.” 요한계시록 10장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 사중주곡은, 메시앙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비참한 시대에 최후의 생명력을 다시 일으키는 것, 내가 언제나 희구해왔고 언제나 가장 사랑해온 것, 즉 크리스트의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다시 떠올리고자 한 작품”이다. 이 곡이 8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 것은 6일간의 창조, 7일째의 안식일에 이어지는 제8요일, 즉 ‘평화의 날’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작곡에 얽힌 사연을 살펴보면 이 곡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오로지 음악으로 삶과 희망을 지켜낸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악의 힘으로 죽음의 어둠을 기꺼이 헤쳐 나가리!” 18세기 말, 모차르트가 오페라 <요술피리>에서 열렬히 노래한 이 말이 20세기 중반,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조금도 변치 않는 진리였음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실레지아의 수용소에 포로들이 도착하자 자동 소총을 든 독일군 장교 한명이 메시앙의 몸을 수색했고, 가방을 압수하려고 했다. 메시앙은 그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표정으로 저항했다.


“나는 다른 포로들과 마찬가지로 옷을 다 벗어야 했다. 벌거벗었지만 나는 나의 모든 보물이 들어 있는 손가방을 단호한 표정으로 지켜냈다. 그 가방에는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 받을 때 위안이 될 관현악곡 포켓판 악보들이 들어 있었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부터 베르크의 ‘서정조곡’까지, 나에게는 복음서와 같은 음악들이었다.”


메시앙의 ‘무서운’ 표정에 기가 꺾인 독일군 장교는 결국 가방을 압수하지 않았다. 식량이 모자라 하루에 수프 한 그릇과 고래 비계 한 덩어리, 기껏해야 검은 빵 하나, 감자, 양배추로 때우는 나날이 계속됐다. 뼈만 남은 포로들 중에는 이빨과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추위가 오면 동료들의 체온으로 얼어 죽는 걸 면해야 했다. 메시앙은 하루에 두 차례 사역을 나가야 했다. 그러나 음악이 있었기에 메시앙은 기꺼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음악의 힘으로 살아남다

 

메시앙이 뛰어난 작곡가라는 사실이 캠프 안에 알려지자 독일군 장교 하우프트만 칼-알버트 브륄이 나서서 그가 작곡을 하도록 허용했고, 수용소 안에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메시앙의 막사 앞에 보초까지 세워 그가 방해받지 않도록 해 주었다. 독일인들이 음악을 이해하고 음악가를 존중한 것은 메시앙에게 크나큰 행운이었고,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었다. 당시 프랑스에 비시 괴뢰 정권이 수립된 직후라서 그랬는지, 나치는 프랑스 포로들에게 비교적 ‘인간적’인 대우를 베풀었다. 메시앙의 음악을 위해서는 다행스런 상황이었다. 


포로였던 샤를르 주르단의 증언. “우리가 ‘프랑스의 모차르트’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그 사람이 사역을 하지 않도록 동료 포로들이 모두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부인 이본느 로리오 여사의 증언을 들어보면 메시앙의 수용소 생활이 호사스러운 것은 결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용한 곳’이라고 독일군이 제공한 장소가 수용소의 화장실이었던 것. “생각해 보세요, 정말 감동적이지요! 불쌍한 메시앙, 3,000명의 포로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앉아서 작곡을 했다니…. 그리 깨끗한 장소가 아니었어요.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도록 화장실에 가둔 채 이 사중주곡을 쓰게 한 거에요.”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사중주곡…. 이러한 악기 편성은 음악사상 선례가 없다. 작곡이 진행된 과정을 음악적인 면에서만 살펴보아도 흥미롭다. 음악 동료가 나타나고 악기가 나타나면 메시앙은 그 상황에 맞게 작곡을 했고, 그 결과 이렇게 특이한 악기 편성이 이뤄진 것이다.


포로 수용소, 희망의 새소리


메시앙은 1939년 11월, 독일이 침공하기 일주일 전에 입대하여 가구 운반병으로 배치된다. 이듬해 5월, 독일군은 ‘전격전’을 감행한다. 그 직후인 6월 20일 메시앙은 숲속에서 잡혀 포로가 되고, 베르덩의 임시 수용소에 갇힌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이 유명한 첼로 연주자 에띠엔느 파스끼에였다. 그는 첼로를 갖고 있지 않았다. 파스끼에와 메시앙은 함께 불침번을 서며 새벽의 새소리에서 음악을 상상했다.


메시앙이 말한다. “봐요, 저기 희미한 빛이 반짝이죠? 새벽이에요. 주의 깊게 들어보세요. 햇빛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침묵이 흐른다. 갑자기 ‘피잎!’ 하는 작은 새소리가 들려온다. 지휘자처럼 기준음을 잡는 새소리다. 5초 후, 모든 새들이 한꺼번에 노래하기 시작한다. 오케스트라처럼! 메시앙이 말을 잇는다. “들어보세요. 저 새들은 하루 동안의 임무를 분담하고 있어요. 밤에 다시 만나서 낮에 보고 들은 것을 함께 얘기하자고 약속하는 거에요.”


파스끼에의 증언. “메시앙이 불침번을 설 때마다 나는 그와 함께 했습니다. 매일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트윗! 피잎!’ 몇 초가 흐르지요. 그러면 갑자기 새들의 오케스트라가 일제히 노래를 시작해요. 귀가 먹먹할 지경이죠. 잠시 후 노래가 멈추고, 나중에 저녁때 확인해 보면 새들은 진짜 메시앙 말대로 낮에 보고 들은 것을 함께 얘기하는 거였어요.”


클라리넷 솔로를 위한 3악장


포로들 중에 클라리넷 연주자 앙리 아코카는 자기 악기를 갖고 있었다. 메시앙은 아코카를 만나자 그를 위해 무반주 클라리넷을 위한 ‘새의 심연’을 작곡해 주었다. 파스끼에와 함께 들은 새소리가 이 곡에 영감을 준 것. 이 ‘새의 심연’은 나중에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3악장이 된다. 여덟 개의 악장 중 제일 먼저 작곡한 게 이 3악장이었다. 


베르덩에서 낭시까지 70Km의 행군이 이어졌다. 나흘 동안 식사는커녕 물 한 방울 못 마신 채 포로들은 걷고 또 걸었다. 메시앙보다 4살, 파스끼에보다 7살 아래였던 아코카는 지친 선배 음악가들의 힘이 되어 주었다. 파스끼에의 증언. “아코카는 내게 충실하고 친절했다. 비교적 젊고 건장했던 아코카는 나를 부축해 주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선 내 생명의 은인이다. 낭시로 가는 동안 우리는 먹지도 못한 채 끝없이 걸어야만 했다. 허기져서 쓰러질 것 같았다. 내가 기운을 되찾을 때까지 아코카는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그는 한 번도 나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고 음악도 아주 잘 했다.”


낭시에 도착하자 처음으로 물을 나눠 주었다. 수천 명의 병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한 방울이라도 많이 마시려고 서로 싸우고 난리였다. 그러나 메시앙은 수용소 뜰 한편에 앉아 주머니에서 악보 한 장을 조용히 꺼냈다. ‘새의 심연’이었다. 낭시의 수용소에서 아코카는 이 곡을 처음 연주해 볼 수 있었다. 아코카는 연주했고, 메시앙은 들었고, 악기가 없는 파스끼에는 보면대 역할을 했다.


아코카는 “너무 어려워서 연주 못 하겠다”며 난감해 했고, 메시앙은 그를 격려했다. “아니, 할 수 있어요, 해 봐요.” 메시앙이 작곡할 의욕을 잃은 채 넋을 놓고 있으면 아코카가 격려했다. “나를 위해 뭔가 또 작곡해 줘요. 우리는 포로에요. 시간이 많잖아요? 음악을 좀 쓰세요.”


메시앙, “할 수 있어요, 해 봐요.”

아코카, “나를 위해 뭔가 작곡해 주세요.”


낭시에서 3주 동안 머문 뒤 세 사람은 실레지아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장 르불레르가 합류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독일군 장교 하우프트만 칼-알버트 브륄이 이들에게 악기를 지급했다. 르불레르는 바이올린을, 파스끼에는 첼로를 갖게 됐다. 그러나 파스끼에의 첼로는 줄이 하나 모자라는 것이었다. 메시앙은 이 세 사람을 위해 바이올린과 클라리넷과 첼로를 위한 삼중주곡 하나를 써 주었다. 이 곡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의 4악장 ‘간주곡’이다. 이 ‘간주곡’은 리듬과 화성이 단순하고 가장 가볍다. 다른 악장에서 발전되는 주제의 단편들이 이 악장에 들어 있다. 따라서 이 단순한 악장을 주춧돌로 삼아 점점 더 크고 복잡한 음악적 건축을 쌓아 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원성을 명상함

첼로를 위한 5악장, 바이올린을 위한 8악장


클라리넷 독주를 위한 ‘새의 심연’이 3악장이 되고, 클라리넷과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간주곡’이 4악장이 됐다. 메시앙은 바이올린과 첼로에게도 독주 악장을 하나씩 주었다. 5악장,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함’은 옹드 마르트노를 위한 ‘아름다운 물의 축제’(1937)의 한 부분에서 따 왔고 8악장,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예수의 불멸성을 찬양함’은 오르간 작품인 <딥티크>(1930)를 다시 손질했다. 이 두 악장은 E장조로, 영원성을 명상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대칭을 이룬다. 바이올리니스트와 첼리스트를 위한 솔로 악장은 피아노 없이도 혼자 연습할 수 있게 했다.


수용소에는 고물 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메시앙은 그 피아노를 자기가 맡으면 네 명의 포로가 사중주곡을 연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피아노를 포함한 네 악기가 모두 등장하는 악장은 1, 2, 6, 7악장, 도합 네 악장이다. 따라서 모두 8악장으로 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악장 ‘수정의 예배’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2악장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보칼리제’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3악장 ‘새의 심연’ (클라리넷)

4악장 ‘간주곡’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5악장 ‘예수의 영원성을 찬양함’ (첼로, 피아노)

6악장 ‘7개의 트럼펫을 위한 분노의 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7악장 ‘시간의 종말을 알리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혼란'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8악장 ‘예수의 불멸성을 찬양함’ (바이올린, 피아노)


악기가 있으면 연주할 수 있다. 음악이 없는 척박한 땅이라면 돌이나 쇠를 음악으로 바꾸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2차대전의 참화 속에서 피어난 음악의 기적은 에띠엔느 파스끼에의 첼로, 앙리 아코카의 클라리넷, 그리고 장 르불레르의 바이올린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음악을 삶과 동일시하는 올리비에 메시앙이 있었기에 실현될 수 있었다. 메시앙은 음악으로 기적을 만들어 낸 인간의 오랜 전통, 오르페우스에서 모차르트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그 전통이 왜 소중한지 이 사중주곡으로 웅변하고 있다.


<시간의 종말을 위하여 - 메시앙 사중주곡 이야기>를 쓴 레베카 리신은 이렇게 책을 끝맺는다. “1941년 1월 15일, 실레지아의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음악은 시간에 대해 승리했다. 네 명의 프랑스 포로와 청중들은 리듬의 사슬을 끊고 시대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서양 음악의 역사와 규범 속에서 자기 위치를 찾았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은 이 곡이 우리 가슴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놀랍도록 숭고한 이 음악적 아름다움은 청중과 연주자를 함께 고양시킨다. 이 음악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장 끔찍한 시대마저 초월할 수 있는 인간 의지와 음악의 힘을 증거하고 있다.”

 

(For the End of Time - The Story of the Messiaen Quartet, by Rebecca Rischin, 2003, Cornell University Press, p.128)    


20세기 음악에 인간을 되살린 작곡가


올해는 메시앙(1908∼1992)의 탄생 100년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지만 “전세계 어디서든 매 순간 이 사람의 음악이 연주되지 않는 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사랑받는 작곡가이다. 바로크시대의 모든 냇물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에게 흘러 들어가서 크게 꽃을 피웠다면 메시앙은 현대음악의 모든 조류 - 쇤베르크의 음열주의, 드뷔시의 인상주의 등 - 를 흡수하였을 뿐 아니라 인도와 그리스의 리듬, 새소리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 그리고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가톨릭 신앙 등 그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거대한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흔히 “현대음악은 난해하다”며 대표적인 예로 메시앙을 들지만 오히려 그는 비인간화의 길을 걸어온 서양 현대음악에 다시 인간의 마음을 되살려 놓은 사람이다.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편견을 버리고 오직 청각의 처녀성을 갖고 들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처음 듣는 음악의 경이와 신비에 귀와 마음을 맡겨보라. 그의 피아노에서는 금속빛의 광채와 함께 온갖 빛깔의 소리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을 들을 수 있고, 그의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에서는 새의 이미지로 표현된 절대자의 섭리를 느낄 수 있다. 멜로디와 리듬이 복잡해서 허밍이나 휘파람으로 따라 부르기 어려운 것은 메시앙의 음악과 친해지기 어려운 조건이다. 하지만 그냥 듣기에 가장 매혹적인 것이 그의 음악임을 오히려 클래식의 문외한들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메시앙은 60년 이상 파리의 생 트리니테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면서 수많은 오르간곡을 썼다. 오페라 ‘아씨시의 성 프랑시스’, 피아노곡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그리고 ‘투랑갈릴라 교향곡’ ‘협곡에서 별들까지’ ‘피안의 빛’을 비롯한 대편성의 관현악곡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남겼다.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곡’은 몇 안 되는 그의 실내악곡 중 가장 널리 연주되는 곡으로, 메시앙 100년인 올해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각 악장에 붙어 있는 종교적인 표제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표제를 무시하고 그냥 들어도 상관없다. 메시앙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다른 장르의 곡들에 비해 쉽게 들릴 것이다. 연주 시간은 약 48분 안팎.

 

Olivier Messiaen, Turangalila SymphonyOrchestre Philharmonique de Radio France

Myung-whun Chung, cond. 2008

 

마에스트로, 성자의 영혼을 부활케 한다

 

사후(死後)에 지키는 약속도 있다. 지휘자 정명훈은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음악감독 시절 20세기 최고의 프랑스 작곡가로 꼽히는 올리비에 메시앙(Messiaen·1908~1992)의 작품을 의욕적으로 소개하고 녹음했다.

메시앙은 정명훈이 연주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의 악보에 '최고의 해석'이라는 문구를 자필로 써주며 신뢰를 보냈고, 정명훈은 메시앙을 '성자(聖者)'라고 부르며 따랐다.

메시앙의 '투랑갈릴라 교향곡'을 녹음하고 있던 1990년 정명훈은 작곡가에게 직접 신작(新作)을 부탁했다. 하지만 정명훈은 "당시 그에게 위촉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고, 당연히 그가 작품에 손을 댔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1992년 메시앙이 타계하고 2~3주가 지났을 때 작곡가의 부인이며 피아니스트인 이본 로리오(Loriod)가 정명훈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남편의 책상에서 악보를 하나 발견했어요. 저와 로스트로포비치(첼로), 하인츠 홀리거(오보에)와 당신을 위해 쓴 곡이네요!"

 

▲ 1990년‘투랑갈릴라 교향곡’녹음 당시 지휘자 정명훈(왼쪽)과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명훈은 당시 사진을 본 뒤“그 때는 나도 젊었는데 최근 서울시향을 맡고서 부쩍 늙었다”며 웃었다. <도이치그라모폰(DG) 제공>

 

생전에 메시앙이 정명훈에게 약속했던 '4인을 위한 콘서트'의 유고(遺稿)를 찾아낸 것이었다. 이 작품은 2년 뒤인 1994년 파리 바스티유극장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세계 초연됐다.

 

정명훈은 "평생 음악가로서 존경하고 따라가기를 원했던 분이 두 사람 있다. 한 명은 LA 필하모닉 부(副)지휘자 시절에 모셨던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Giulini)이며, 다른 한 명은 메시앙이다. 줄리니가 내게 '목사'였다면 메시앙은 '성자'였다. 두 분은 음악적으로도 완성되어 있었지만, 인간적으로는 더욱 훌륭했다"고 기억했다.

올해 메시앙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정명훈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작곡가의 관현악을 지휘한다. 29일 메시앙의 대표작인 '투랑갈릴라 교향곡'을 서울시향과 연주한다.

정명훈은 인터뷰에서 "메시앙은 한평생 자신의 믿음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 그는 단 1초도 자신의 믿음에 대해 회의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흔들리고 있는데…"라며 존경을 표했다.

 

▲ 정명훈이 간직하고 있는‘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악보. 작곡가 메시앙이 직접“최고의 해석”이라는 문구를 썼다.

 

1989년 정명훈이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작곡가가 객석에서 귀를 기울였다. "제 생각엔 당시 제 연주가 별로였는데, 메시앙은 콘서트가 끝난 뒤 찾아와서 '평생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는 처음'이라고 말했죠. 저는 '농담인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매번 찾아올 때마다 같은 말을 했어요. 억지로 지어내는 칭찬이 아니라 언제나 사물을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정명훈은 "메시앙 같은 삶의 표본이 있었기에 쫓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정명훈은 오는 4월부터 프랑스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함께 메시앙의 주요 관현악을 1년 내내 조명할 계획이다. 공연만 6시간이 걸리는 대작 오페라 '아시시의 성(聖) 프란체스코'도 10월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한다. 정명훈은 "너무 길어서 악보만 책 8권에다가 무게만 25㎏에 이른다. 연주 이전에 들고 다니는 것부터 걱정"이라며 웃었다.

평소 메시앙이 그를 어떻게 불렀는지 궁금했다. 정명훈은 "창피하게도 '마에스트로'라고 불러줬다"고 했다. 그는 메시앙을 뭐라고 불렀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저는 부를 수도 없었죠. 그냥 쳐다보기만 했을 뿐…."